[좋은시]막걸리-천상병
♬천상병 시 막걸리 연산군 시 막걸리 찬가 모던주막 월선네 정자점 막걸리 함민복 막걸리 이승하 막걸리 최영철 머리맡에 막걸리 두 병 놓여 있었다 김해자 막걸리 한 잔 영탁 농부와 시인 시인과 막걸리 막걸리 시인 정연복♬
막걸리
천상병
천상병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도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잔으로 천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연산군도 막걸리 애호가였다. 연산군일기에는 그가 1504년 1월에 지은 막걸리 찬가가 남아 있다.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는 정원에 가득히 노니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라고 읊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연산군의 시가 아닐까?
"나는 술을 좋아하되 /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 막걸리는 /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 생각날 때만 마시니 /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 맥주는 /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 마누라는 /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 음식으로 /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 다만 이것뿐인데 /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 밥이나 마찬가지다 / 밥일 뿐만 아니라 / 즐거움을 더해주는 /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 모두
막걸리
천상병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운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막걸리찬가
우리민중 애환담긴 막걸리를 먹어보세
돈없는놈 가난한놈 한잔이면 그만이지
일할때도 막걸리고 밥먹을때 막걸리라
우리곡식 곱게담가 다독다독 막걸리고,
힘든농사 결실맺힌 우리농산 곡주니라.
연인이랑 막걸리로 걸죽한정 이어보세.
친구들과 한잔두잔 따스한정 막걸리라
영양많고 맛도좋은 막걸리를 먹고먹어,
스태미나 정력부족 막걸리로 해결하세.
이어가는 손끝마다 막걸리향 정이돈다.
쌀막걸리 사랑하고 가짜들은 멀리하세.
진짜곡주 약이되고 화학주는 병이된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막걸리를 사랑하세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막걸리 / 함민복
윗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미네르바』2016년 여름호
막걸리 / 이승하
갈짓자 걸음으로 큰아버님 오신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사변통에 왼팔 잃고 반백의 머리카락
어찔어찔 어질머리 큰아버님 오신다
갈짓자 걸음으로 유복자 울 아재비 오신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
부역자 없는 죄 쓰고 학살당한 일가 친척
실룩실룩 울먹이며 거창 아재비 오신다
갈짓자 걸음으로 오촌 당숙 오신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북만주로 피신하고 그 땅에 묻힌 종조부님
글썽글썽 먼산 보며 광복절날 당숙 오신다
- 이승하,『사랑의 탐구』(문학과지성사, 1987)
막걸리 / 최영철
쌀뜨물 같은 이것
목마른 속을 뻥 뚫어 놓고 가는 이것
한두 잔에도 배가 든든한 이것
가슴이 더워져 오는 이것
신 김치 한 조각 노가리 한 쪽
손가락만 빨아도 탓하지 않는 이것
허옇다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다가
벌컥벌컥 샘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것
한 잔은 얼음 같고 세 잔은 불같고
다섯 잔 일곱 잔은 강 같고
열두어 잔은 바다 같아
둥실 떠내려가며 기분만 좋은 이것
어머니 가슴팍에 파묻혀 빨던
첫 젖맛 같은 이것
시원하고 텁텁하고 왁자한 이것
어둑한 밤의 노래가 아니라
환한 햇볕 아래 흥이 오르는 이것
반은 양식이고 반은 술이고
반은 회상이고 반은 용기백배이다가
날 저물어 흥얼흥얼 흙으로 스며드는
순하디 순한 이것
- 최영철,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
머리맡에 막걸리 두 병 놓여 있었다 / 김해자
붉은 접시꽃 옆에
다수굿이 서 있던 살구나무 집 어매
반나마 없어진 이를 가리며 합죽 웃었다
술 있시믄 한 병 빌려줘유 낼 트럭 오믄 갚으게
테리비는 지 혼자 뭐라뭐라 떠들어대지
껌껌하니 나갈 수가 있나 이야기할 사램이 있나
술이라도 없었으먼 어찌 살았을까 몰러 질고 진 밤
후루룩 김치 국물이나 마시다 곯아떨어지는 겨
고대로 가는 중도 모르게 갔시먼 좋것네
희망근로 새겨진 노란 조끼 입고
새벽같이 빗자루 들고 나다니더니
고추밭 이랑에 엎드려 있더니 어느 날은
콩밭 매다 호미처럼 구부리고 주무시더니,
청국장 띄우는 집 들러 김 모락모락 나는
콩 몇 알 뭉쳐 자시고 정신 오락가락하는
친구 집 들러 코피 한잔 나눠 자시고
허청허청 집으로 가더니 고대로 가셨다
머리맡엔 막걸리 두 병이 댕그마니 놓여 있었다
- 김해자,『해자네 점집』(걷는사람, 2018)
◇ 막걸리 한잔(2019)
작사ㆍ 작곡/ 류선우, 노래/ 영탁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시인과 막걸리 시 모음> 정연복의 ‘막걸리 시인’ 외
+ 막걸리 시인
그래도 시인이랍시고
열심히 시를 짓다가 보면
어느 한순간 밀물같이
허기가 밀려오는데.
초록빛 병에 담긴
막걸리 두어 잔을 마시면
심신의 피로가 풀리면서
이따금 멋진 시상도 떠오른다.
시를 애써 만들다 보니
막걸리를 맛있게 먹게 되고
또 막걸리 덕분에 어쩌다가
맛깔스런 뽕짝 시도 생겨나니.
비록 가난해도
크게 남부러울 것도 없는
꼭 막걸리 같은 시를 꿈꾸는
나는 행복한 시인이다.
+ 시인과 막걸리
내가 어쭙잖게
삼류 시인이라도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서울막걸리 덕분이다.
시를 짓다가
생각의 흐름이 멈출 때
막걸리 한잔을 마시면
생각의 숨통이 트여
뽕짝 인생살이를 노래하는
졸시 하나 태어난다.
서울막걸리가 이름 그대로
장수하듯이
나의 시 쓰기도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 시인과 막걸리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시를 쓰다 보면
한순간 밀물같이
허기가 몰려옵니다.
장수막걸리 한잔
가득 따라 마십니다
금방 기운이 나서
다시 시 쓰기를 계속합니다.
무명 시인의 생활은
무척 가난하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막걸리가 있어
큰 위로가 됩니다.
육신의 배고픔도 달래주고
이따금 번득이는 영감도 주는
막걸리가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벗입니다.
+ 농부와 시인
논밭에서 몇 시간
땀 흘려 일한 농부들이
새참에 곁들여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는 꿀맛이겠지요.
컴퓨터 앞에 앉아 두어 시간
열심히 시를 쓰고 나서
습관처럼 마시는 막걸리
한잔도 기막히게 맛있습니다.
농부들의 구슬땀이
알찬 결실을 맺는 것같이
나의 볼품없는 시 나부랭이도
누군가에게 밥이 되면 좋겠습니다.
+ 농부와 시인
구슬땀 흘리며
농사일 하는 농부들이
논두렁 밭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을 마십니다.
책상 앞에 앉아
긁적긁적 시를 쓰다가
허기가 느껴지면 나도
막걸리 한잔을 마십니다.
내가 쓰는 시들이
보잘것없는 줄은 알지만
세상의 춥고 가난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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