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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탕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4.30 조선제일의 장국밥집 무교탕반
  2. 2017.03.07 조선 현종때 마의(馬醫) 백광현이야기

 

 

♬장국밥/탕반/탕반집/무교탕반/마의

마의 백광현♬

 

 

조선제일의 장국밥집

무교탕반

 

▲ 조선최고의 국밥집 무교탕반

 

임금도 찾아와 식사를 즐겼다고 알려진

실존했던 한양 제일의 음식점!!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음식의 판도가

바뀌었다. 탕반가(湯飯家)에서 장국밥을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무교동의 '무교탕반'이

유명했는데 장시가 크게 열리는 곳이기 떄문이었다.

 

무교탕반의 역사는 아주 오래돼 조선 제24대왕

헌종(1834~1849년)도 사복을 입고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최고급 대중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려들다보면 음식이 발전하고

시장이 번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장국밥

 

 밥에 고기와 적, 나물들을 고루 얹어 장국을 부어 먹는

국밥이다. 양지머리를 무와 함께 푹 삶아 고기는

건져썰어 양념하고 뚝배기에 밥을 담고 장국을 부은 후

고기, 쇠고기산적,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콩나물을

얹어 먹는다. 제사를 지낸 후 남은 탕, 나물, 적 같은

남은 음식을 골고루 쉽게 먹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유래가 있다.

 

우리나라의 밥상은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구성되는데

밥과 국 한 가지는 기본적으로 갖춘다.

국에는 콩나물국,뭇국,미역국, 시금치,아욱,배추, 시래기

등을 넣은 된장국 그리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이

있고, 쇠고기의 양지머리나 사태를 넣고 끓인 고깃국이나

곰탕, 설렁탕,육개장 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탕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것을 좋아한다. 국에다 밥을 만 음식을

탕반(湯飯) 또는 장국밥이라 하며, 특별한 다른

찬을 갖추지 않아도 깍뚜기나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사태: 거세소의 앞 또는 뒷다리 부위. 다소 질기므로

주로 스튜 요리에 이용한다.

 

 

 

 

"그리웠다 국밥아~"

 

 

 

 

 

조선 현종때 마의(馬醫) 백광현이야기

 

 

 

 

Posted by 다정한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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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의/마의/화타/인조/소현세자/전의감/치종지남

임언국/조승우/이요원/곽상궁/무교탕반/전의감♬

 

 

 

마의 馬醫

 

 

 

■인조: 조선의 제16대 왕(1623~1649 인조 27)

광해군 떄의 중립정책을 지향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 광해군4~1645 인조23):

인조의 맏아들.

어머니는 한준겸의 딸인 인열왕후 한씨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빈과 함께 인질이 되어

청나라의 수도였던 선양(瀋陽)으로 끌려갔다.

1645년(인조23년) 음력 2월에 억류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하지만 음력 4월 26일에 창경궁의 환경전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리고 고양의 소경원에 매장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현세자가 병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가 염습에 참여하고 나와서

 '시신이 온통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에서

모두 피를 흘리고 있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것 같았다'는 증언을

남겼다는 내용도 기록하고 있다(인조 23년 6월 27일).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 사람들을 모집해 둔전을 경작해서 곡식을

쌓아 두고는 그것으로 진기한 물품과 무역을 한 것을

인조가 못마땅하게 여겼고, 인조에게 총애를 받던

소용(昭容)조씨가 세자와 세자빈을

헐뜯어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현세자가 죽은 뒤에 인조는 세손인 이석철이 있는데도,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鳳林大君,제17대 효종)을

세자로 삼았다. 당시 영의정 김류 등 대신들이 반대했는데도

인조는 봉림대군을 세자로 봉했고, 이듬해인

1646년(인조2)에는 소용 조씨를 저주하고 임금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는 혐의로 소현세자의 세자빈 강씨를 죽였다.

그리고 1647년(인조25)에는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모두 제주도로 유배 보냈다.

당시 12세와 8세였던 이석철과 이석린은 이듬해 제주도에서 죽었고,

4세였던 이석견도 효종 때인 1656년(효종7)에야

유배에서 벋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인조가 소현세자의

세자빈과 자식들에게도 무자비하게 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인

조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효종(孝宗,1619~1659): 인조의 둘째 아들로

인조반정 이후 봉림대군에 봉해졌고 소현세자 급서 후

조선의 17대 왕이 되었다. 정통성의 약점을 안은 효종은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현종(顯宗, 1641 인조19~1674 현종 15):

조선의 제 18대왕으로, 효종의 아들이다.

 

숙휘공주: (1642~1696.10.27)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4녀

 

귀인 조씨(소용조씨): 인조의 후궁, 종1품 귀인까지 올랐으나

1651년(효종2년) 김자점과의 역모가 드러나 사사됨.

 

김자점(金自點,1588~1651):

이귀 등과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으며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 사림세력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에 누설하였다.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익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처형되었다.

 

■이형익(李馨益): 조선 후기의 침의이다.

소현세자의 병간호를 하다가 죽자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두터운 신임으로 벌을 받지는 않았다.

 

*인조반정: 1623년 이귀, 김유 등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앉힌 사건.

 

*전의감(典醫監):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는 의약의 공급과

임금이 하사하는 의약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관서.

 

*혜민서(惠民署): 조선시대 의약과 서민의 치료를 맡아본 관청

 

*사복시(司僕寺: 절 사, 관청 시): 조선시대의 여마(與馬), 구목 및

목장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서각(犀角): 코뿔소의 뿔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 성질이

차서 해열제, 지혈제, 정신안정제로 쓰인다.

때론 최음제로도 쓰인다.

 

*단자(單子): 사주 또는 후보자의 명단 따위를 적은 종이.

예)결혼을 앞두고 사주를 쓴 단자를 보냈다.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

돈의 액수나 선물의 품목, 수량, 보내는 사람의

이름 따위를 써서 물건과 함께 보낸다.

 

*모화관(慕華館):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던 객관

조선시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사신이 서울에 도착하면 이 모화관에 드는데, 이 때 조선의

왕세자는 그의 앞에 나아가 지배의 예를 행하고 백관도

재배의 예를 행한다. 이 때 백관은 반을 나누어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관에 나아가 대기하였다. 또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백관이 품계의 정종(正從)의 위치를 달리하여 두 줄로

섰다가 일제히 재배례를 행하였다. 그 뒤 청일전쟁 이후

모화관은 폐지되고, 1896년 서재필 등이 독립협회를 세우고

그 모화관을 사무실로 쓰는 한편,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독립관이라 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회관으로 사용하였다.

 

 

 

백광현(白光炫,1625~1697):

조선 후기의 어의이다.

처음에는 말을 고치는 마의였으나, 사람의 종기도 침으로

 째어 치료하는 외과적 치료법을 개발하여 많은 환자를 완치하였다.

 

■화타(華佗):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사이에 명의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 등장인물]

□백광현(白光炫 흰백, 빛 광, 빛날 현) /조승우

□의녀 강지녕/이요원

□내의원 도제조이자 이조판서 정성조/김창완

□효종의 비(妃)인 인선왕후 역: 김혜선

□어린 백광현을 이끌어 주는 '마의' 추기배역: 감초 연기의 달인 이희도

□조승우의 스승이자 허준, 이제마와 함께

조선 3대 의성으로 불리는 사암도인: 주진모

□조선 최고의 맛집 '무교탕반'의 여주인이자 여걸 주인옥 역:최수린

사암도인(舍岩道人)/주진모

□내의원/혜민서/전의감/의녀청(醫女廳)

사극명장 이병훈 PD/김이영 작가

 

 

 

 

 

▲호감의녀 장인주 /유선 분

-내의원 수의녀 <침의 달인>

-침술의 귀재로서 침술로 따라갈 사람 없던 천재적인 의녀

-높은 의술을 지닌 당대 최고의녀

-온화한 카리스마를 선보여 호평

-단아한 미모와 뛰어난 의술로 눈길을 모은다

"우리가 어쩌다...이렇게 되었습니까?

강도준 나으리와 저, 그리고 나으리..

우리가 어쩌다가!..."

 

▲ 조선최고의 국밥집 무교탕반

 

임금도 찾아와 식사를 즐겼다고 알려진

실존했던 한양 제일의 음식점!!

 

 

18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울 음식의 판도가 바뀌었다.

탕반가(湯飯家)에서 장국밥을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무교동의 '무교탕반'이 유명했는데 장시가 크게 열리는 곳이기

떄문이었다. 무교탕반의 역사는 아주 오래돼 조선 제24대왕

헌종(1834~1849년)도 사복을 입고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최고급 대중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려들다보면

음식이 발전하고 시장이 번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장국밥

 밥에 고기와 적, 나물들을 고루 얹어 장국을 부어 먹는 국밥이다.

양지머리를 무와 함께 푹 삶아 고기는 건져썰어 양념하고 뚝배기에

밥을 담고 장국을 부은 후 고기, 쇠고기산적,도라지나물, 고사리나물,

콩나물을 얹어 먹는다. 제사를 지낸 후 남은 탕, 나물, 적 같은 남은

음식을 골고루 쉽게 먹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유래가 있다.

 

우리나라의 밥상은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구성되는데 밥과 국

한 가지는 기본적으로 갖춘다. 국에는 콩나물국,뭇국,미역국, 시금치

아욱,배추, 시래기 등을 넣은 된장국 그리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이

있고, 쇠고기의 양지머리나 사태를 넣고 끓인 고깃국이나 곰탕, 설렁탕

,육개장 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탕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거을 좋아한다. 국에다 밥을 만 음식을

탕반(湯飯) 또는 장국밥이라 하며, 특별한 다른 찬을 갖추지 않아도

깍뚜기나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사태: 거세소의 앞 또는 뒷다리 부위. 다소 질기므로

주로 스튜 요리에 이용한다.

 

 

 

▲무교탕반의 여주인 주인옥 /최수린 분 

강지녕의 절친

 

화려한 가채와 당당한 표정으로 촬영장을 압도함

▲내의원 제조 /손창민 분 

 

▲마의 고주만(혜민서 제조→내의원 수의) 역의 이순재

 

*수의(首醫)): 조선시대에 내의원에 속한 내의(內醫)의 우두머리 의원

 

▲마의 강도준 역의 전노민  

 

▲마의 이성하 역의 이상우

 

▲마의 이성하 역의 조보아

 

▲마의 좌상 정성조역의 김창환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동지사(同知事):조선시대

의금부(조선시대 사법기관) 등에 속한 종이품(從二品)관직이다.

 

▲백석구 (박혁권 분)

 

▲ 마의 추기배 /이희도 분

 

▲ 마의 자봉 /안상태 분

 

▲ 마의 탤개맨(탤런트+개그맨) 4인방

 

 맹상훈(조승우의 옛스승이자 무교탕반 숙수 오장박)

안여진(천방지축 김소은을 보좌하는 곽상궁)

윤봉길(조승우의 혜민서 의생 동기 박대망)

이관훈(무관으로서 보다 김소은의 잔심부름을

더 많이 하는 호위무사 마도흠(마군관)

 

개그맨 보다 더 웃기는 코믹연기로 개성만점 캐릭터

 

*오숙수>숙수(熟手):잔치화 같은 큰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 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치종지남> 조선참본 표지

(명종 때. 전라도 정읍출신 임언국의 의서)

 

■두창(痘瘡)

천연두 두, 부스럼 창

두창은 발열, 수포, 농포성의 병적인 피부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감염질환으로 한 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 전 세계적으로 두창은 사라진 질병으로 선언되어다.

 

 

Posted by 다정한 호롱불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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