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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민족시인 윤동주. 그 이름 앞에는 으례 '민족시인'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불과 2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해져 그의 이미지만 떠올려도 짠한 아픔이 전해집니다. 해방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 군국주의의 제물이 되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의 시엔 여성적인 섬세함이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다분히 남성적인 매력이 또한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의 이슬처럼 때묻지 않은 무엇이 느껴집니다. 그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가 이 '자화상'입니다.
'논가 외딴 우물'이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어,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자아'를 이미지화 시켰습니다. 또한 그 것은 냉혹한 현실을 부정하고 나만의 공간을 따뜻함으로 덮을 수 있는 유년기의 '논가'의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비친 '나'를 보는 것입니다.
누구나 겪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연민과, 그리고 이런 변증법적 사고를 통한 화합의 과정이 시 속에는 그려집니다. 시어 중 '사나이'와 '가을'을 대비시켜 우수에 찬 자아의 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1939년에 씌여진 시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불과 21살의 약관이었습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 것일까요? 시련이 인물을 만드는 것일까요? 이제 '민족시인'의 타이틀을 떼고 '국민시인'으로 바꿔야하지 않을까요?(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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