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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국내여행지/역사여행

by 호롱불촌장 2017. 3. 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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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무오사회/김종직/김일손/조의제문

이극돈/유자광♬

 

 

역적

 

 

 

 

MBC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홍길동 (윤균상 분)

 

1500년(연산군 6)을 전후하여 서울 근처에서 활약하던

농민무장대의 지도자. 양반지주층을 중심으로 토지소유가

확대되면서 토지를 잃고 지배층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도망쳤다. 이들은 산속으로 피해 무장대의

기본성원이 되어 양반지주나 관청을 습격했는데,

지배층들은 이들을 '도적'이라 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연산군 통치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이러한 농민무장대가 일어났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홍길동이 이끄는 무장대였다. 홍길동은 양반관리의

복장을 하고 스스로 '첨지'라 하면서 무장한 많은 농민을

지휘하여 여러 고을의 관청들을 습격했다. 결국 체포되어

의금부에 취조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뒤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홍길동전.으로 소설화되기도 했다.

 

■김일손

1498년(연산군4)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가 있었다.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던 것이

발단이었다. 장본인은 영남 사림파의 중심이자 사관

으로 있었던 김일손(1464~1498), 사림파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활용한 훈구파의 정치 공작

으로 김일손은 극형에 처해졌고, 그의 스승인 김종직

마저도 부관참시를 당했다. 그러나 꺽이지 않았던

그의 직필(直筆)정신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후대까지도 그를 널리 기억하게 하였다.

 

■무오사화

1498년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사초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사화로 조선시대 4대사화 가운데

첫 번째 사화이다.

 

■조의제문

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 이 글을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을 때 사초에 적어 넣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성종실록.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편찬

책임자는 이극돈으로 이른바 훈구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 중에 이극돈의 비행이 기록되어

있어 김일손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던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 중에서 발견한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기화로 하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를 숙청할 목적으로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의

무리로 몰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움직여

큰 옥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인데,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이목, 허반 등이 참수 되었다.

 

■유자광(?~1512)

조선 전기의 대신. 서자에서 일등공신에 오른

논쟁적 인물. 서얼 출신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예종 때에는 '남이의 옥'을, 연산군 때에는

무오사화를 주도하며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유자광에 관련된 이미지는 '고변과 음해로 정적을

숙청해 영달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유배지에서

삶을 마친 간신'정도로 요약될 것이다.

 

■충원군(배우 김정태 분, 가상인물)

 

연산군 세자 시절 가장 잔인한 살인사건 중 하나로 기억될

'여종 살인사건'에 연루된 충원군 이정은 타락한 행실 때문에

여러차례 구설수에 오르지만 왕족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처벌을

피해갑니다.

 

왕족 출신 충원군 이정이 저지르는 악행에 수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때 홍길동이라는 변수가

나타나고 이후 조선의 왕족으로 예측가능한 삶을 살던

충원군의 인생은 알 수 없는 인연과 사건으로 뒤틀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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