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영루/다산정약용/산영루에서/마당바위
/김성근/안사심상훈/북한산성선정비군
북한산성비석거리/민영휘선정비
이태백/두보/장진주/손암정약전♬
북한산 여행
산영루
북한산 산영루는 중성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향하는
계곡을 따라 오르면 용학사 갈림길에서 태고사
방향으로 오르다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중흥사지 비석거리 맞은편
넓은 암반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찾았던 누각이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찾아
북한산을 찬양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1902년까지 누각이 존재했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주춧돌 13개만 남아있던 것을
2014년에 고양시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북한산의 최고 절경 중 한 곳으로
꼭 한 번 여행을 권유합니다!!
*여행일자: 2015년 10월 24일(토)
*여행인원: 친구 8명
북한산성 탐방 코스
산영루(山映樓:뫼 산, 비칠 영, 다락 루 )
고양 북한산 산영루는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한곳에 자리잡은 문화유산으로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양 북한산 산영루
경기도 기념물 제223호
소재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
관리자: 고양시장
산영루의 건립시기는 북한산성이 축성(1711년)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고양시가 2014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산영루는 그 아름다운 이름처럼
당대 명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추사 김정희(1786~1856)로
이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시문을 남겼습니다.
또한 성호 이익91681~1763)은 산영루에 뜬 달을
삼각산 팔경의 하나로 기록하는 등
조선명사들의 흔적과 문향(文香)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고양 북한산 산영루 연혁
1794년(정조18년)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산영루 유람 기록
고양 북한산 산영루 중수기(고양시장)
1794년(정조18년)
산영루에서 / 다산 정약용
巖蹊在斷見危欄: 바위 지름길 끊어지고,
위태로운 난간이 보이네.
雙腋冷冷欲羽翰: 두 겨드랑이는 서늘하여
날개깃털이 돋는 듯하고
十院疎鐘秋色暮: 여러 암자의 성긴 종소리, 가을 빛 저무네.
萬山黃葉水聲寒: 여러 산은 낙엽이요, 물소리는 차구나
林中繫馬談戱作: 숲 속에 말 매고 농담을 하는데
雲裏逢僧外貌寬: 구름 속에서 만난 스님 외모가 관대하네.
日落煙霏銷蒼翠: 해가 지니 안개가 푸른 물을 감싸는데
行廚已報進杯盤: 부엌에서는 술상을 내간다고 알려오네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에 날개 돋쳐 날아갈 것 같구나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 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매어두고 얘기 꽃을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註) 정약용의 이 시를 이해하려면 산영루의 양 날개를 봐야 하는데
일반 등산로를 따라 이동하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반드시 계곡아래 '김성근'이라는 이름의 글씨가 있는
바위에 내려가야 이 시의 수련(한시의 제 1연)의
'바위길 끊어지고 위태로운 난간이며, 양 겨드랑이의 날개'를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 아름다운 산영루에서
1794년 다산 정약용이 '산영루에서'라는 시를 읊었다네..."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저 바위에 새긴 글씨가 김성근, 안사 심상훈...."
북한산의 절경 마당바위 계곡
"저~산영루를 한번 보시게나..
얼마나 뺴어난가..."
산영루를 찾은 가을 행락객들
산영루의 마당바위 낙엽
산영루의 마당바위 낙엽
"김성근, 안사 심상훈...
이 위치가 바로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가 그렇게 따랐던 둘째 형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술자리를 같이했던, 산영루의 양날개가 보이는 그 자리라고 합니다.
김성근(金聲根)
1835년 양력 3월 19일~1919년 양력 11월 27일
조선말기의 문신, 서예가, 정치인이자 성리학자이며
대한제국의 정치인, 일제 강점기의 관료, 조선귀족입니다.
청렴결백했고 서예에 뛰어났으며
필체는 미남궁체(米南宮體)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사람도 친일파가 되었다...아~
그 옆에 새겨진 사람은 안사 심상훈(按使 沈相薰)
안사는 안핵사의 준말인데 안핵사는 조선 후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리를 위해 파견한 임시 특별 직책,
심상훈은 1854년(철종5)~? 조선말기의 문신입니다.
갑신정변 때 개화당의 기밀을 민비에게 밀통하였고..
동학교도의 탄압에 앞장섰고...보조화를 주조하여
유통질서에 혼란을 초래하였다는 이유로 독립협회로부터
탄핵이 대상이 되었다가 1898년 체직처분을 받았다고 하네요...
창원대학교 사학과 도진순교수와 함께하는 역사탐방
"이태백이 누구인가?
또 두보는 누구인가"
<장진주>라는 시를 들어봤는가?
나는 첫 구절을 좋아하는데
어떤 친구는 끝 부분을 좋아한다네..!!"
將進酒(장진주) 술 한 잔 받으시오 李白(이백)
君不見(군불견)
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불복회)
바다로 내 닫아서는 돌아오지 않았음을!
君不見(군불견)
그대여! 보지 못 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고당명경비백발)
고대광실 밝은 거울에 비친 서글픈 백발,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아침에 검은머리 저녁때 백설 됨을!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인생 젊어 득의 찰 때 즐기기를 다할지니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금 술통 헛되이 달빛아래 두지 말지어다.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나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쓸모가 있었음인데,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돈이야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니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
염소 삶고 소 잡아 맘껏 즐겨 보세나!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한번 마시기로 작정하면 삼백 잔은 마실 일
岑夫子丹丘生(잠부자단구생)
잠부자여! 단구생아!
將進酒杯莫停(장진주배막정)
술 권하거니 잔 멈추지 말고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
노래한곡 부를 테니
請君爲我側耳聽(청군위아측이청)
귀 기우려 들어주게
鐘鼓饌玉不足貴(종고찬옥부족귀)
고상한 음악 맛있는 음식 귀 할 것도 없으니
但願長醉不願醒(단원장취불원성)
다만 원커니 이대로 취하여 부디 깨지 말기를!
古來聖賢皆寂寞(고래성현개적막)
예로부터 성현들도 지금 모두 사라져 없고
惟有飮者留其名(유유음자유기명)
오로지 술 잘 마시던 이들의 이름만 남았다네.
晉王昔時宴平樂(진왕석시연평락)
그 옛날 진사왕이 평락관에서의 연회,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십천자환학)
한말에 만냥 술로 질펀히도 즐겼다네.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여보시게 주인양반 어찌 돈이 모자라다 하나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
어서 가서 술 사오시게 같이 한잔 하자고야
五花馬千金구(오화마천금구)
오화마,천금구 따위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
아이 불러 어서 술과 바꿔오시게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우리 함께 더불어 만고의 시름 잊어나 보세!
..........................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불복회)
奔달리다 급히가다 분 流흐를류 到이를도 海바다해
不아닐불 復돌아올볼 回돌아올회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千일천천 金쇠금 散흩을산 盡다할진
還돌아올환 復돌아올복 來올래
*呼부를호 兒아이아 將장:장차~하려고 하다 出날출
換바꿀환 美아름다울미 酒술주
*與더불여 爾너이 同한가지동 銷녹일소
萬일만만 古옛고 愁근심수
*구:가죽옷 구(求+衣)
주)
1. 고당 : 고대광실, 호화주택
2. 청사 : (청년 시)의 검은머리.
3. 잠부자 : 이백의 친구 잠삼(岑參)
4. 단구생 : 이백의 친구 원단구(元丹丘)
5. 진왕 : 조조의 셋째 아들,
칠보시로 유명한 조비의 동생인 조식(曺植).
진왕에 봉해졌고,
시호가 사(思)이므로 진사왕이라 한다.
6. 평락 : 낙양의 평락관.
7. 경수 : 지금 바로....해야 한다
8. 고취 : 사오다. 고(沽)=매(買)
9. 오화마 : 다섯 가지 털 무늬가 있는 명마.
10. 천금구 : 천금의 가치가있는 비싼 가죽 옷.
[이백 李白]
701~762
자는 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국적 唐
츨생지는 중국 촉나라 장밍현(오늘날의 쓰촨성)
두보와 함께 '이두'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립니다.
[두보 杜甫]
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 국적 唐
출생지는 중국 허난성 궁현
중국 최대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음.
자연의 사실 가운데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한산의 절경 산영루
북산산성 선정비군
이곳의 비석들은 북한산성 관리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북한승도절목
이 암각문은 1855년 (철종6)에 새긴
북한승도절목으로 모두 325자입니다.
명문에는 승병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떄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 3가지를 제시해 놓았습니다.
북한승도절목
북한승도절목
북한산성 비석거리와 민영휘 선정비
이 비석은 1891년 경리사(북한산성 관리기관인
경리청의 수장)를 역임한
민영준(1852~1935:
영준은 민영휘의 어릴 때 이름)의 선정비입니다.
친일파, 국내 제일의 부자 중 한명..밑줄!
북한산성 비석거리와 민영휘 선정비
칠유암 탁본
이 탁본은 북한산성 탐방로 입구에 있는
'북한동역사관'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북한산 대서문을 지나 산정을 향해 약 150정도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는 너른 바위가 칠유암(七遊巖)입니다.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계곡 하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올라가 발을 담그기에 좋습니다.
바위에는 '칠유암'이라는 글자가 석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곳은 선비들이 여름의 더위를 피해
탁족회(濯足會)를 즐겼던 곳으로 알려졌으며,
칠유암이라는 석각은
시인 강박(姜樸;1690~1742)의 글씨로 전해집니다.
북한산성 탐방로 입구에 있는 북한동역사관
산영루에서 산행을 다시 시작할 때
보이는 길가의 돌탑...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나이다~"
북한산에서 빼어난 절경 중 하나인 산영루를
여행하시는 여행객여러분께서는
즐겁고 유익한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창원대학교 사학과 도진순교수와 함께하는
역사탐방 제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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