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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

국내여행지/역사여행

by 호롱불촌장 2017. 5. 1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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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율곡이이/강릉 오죽헌

중부학당/비익조/비익당/매창

신사임당 고매첩♬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상징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

(2015.7.18 오죽헌에서 촬영)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연산군 10)~ 1551년(명종6)

 

사임당은 당호이며, 당호의 뜻은 중국 고대 주나라의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것으로서,

태임의 최고의 여성상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본명은 신인선(申仁宣)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현재 강릉시 죽헌동)에서 서울 사람인

아버지 신명화와 강릉 사람인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의 둘째로 태어났다.

 

1522년 19세에 덕수 이씨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였다.

2년 뒤인 21세 때 맏아들 , 26세때 맏딸 매창, 33세 때에

셋째 아들 율곡 이이를 낳는 등 모두 4남 3녀를 낳아 길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남편 이원수의 선조가 살던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

여러 해 살았다. 이따끔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했으며, 셋째 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1541년(중종36) 3세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지금의 종로구 수송동과

청진동)에서 살다가 1551년(명종6)봄에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 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

 

그의 재능은 7세에 안견(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했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임당은 7세때부터

스승 없이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아버지 신명화(申命和)는 본관이 평산으로 고려 태조 때의

건국공신인 신숭겸의 1세손이다. 신사임당의 조부이자 신

명화의 부친인 신숙권은 영월군수로 재임한 적이 있고,

이때 매죽루라는 누각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신명화는 서울 출신으로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진사가 되었을 뿐

관직을 사양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전한다.

신명화가 44세 되년 1519년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들이

숙청된 기묘사화가 일어났으나, 벼슬을 하지 않았던

덕에 화를 면했다고 한다.

 

사임당이 13세 떄인

1516년(중종11)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의 기묘사화의 참화는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이사온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다.

이에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 용인 이씨로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은 증좌 한성 이원수(李元秀)인데, 그녀의 예술성을

보다 북돋워준 것은 남편이었다. 사임당이 친정에서 많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량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은 사임당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아내를 이해하고 또 재능을 인정하고 있었다.

 

신사임당의 생애에서 눈 여겨봐야 할 것이 강릉지역에서

터를 둔 외가이다. 어머니 이씨 부인은 본관이 용인이며

강릉 사람으로 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손녀이다. 이씨 부인은

강릉에서 외조부인 최응현 밑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최치운은

이조참판을 지낸 인물이다. 신사임당과 모친인 이씨 부인이

외가 쪽과 밀접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조선전기의

가족문화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는

부계중심의 가족문화가 발달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가족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린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중기까지 결혼을 바탕으로 한

가족문화는 여성의 거주지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때문에 심사임당과 그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이

친정 쪽에서 거주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인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중부학당

 

조선시대에 도성에 설치된 초등교육기관인 4부학당의 하나로서

태조 원년(1392년)에 설치되어 고종 31년(1894년)에 혁파되었음.

 

■분재기(分財記)

전통시대 재산의 상속과 분배에 관한 문서, 주로 재산의 주인이

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 재산을 상속하거나 분해하여 준 문서

 

△율곡 이이

(2015.7.18 오죽헌에서 촬영)

 

 

 

 

 

 

 

강릉 오죽헌 여행-2015.7.18

 

 

 

 

 

 

□신사임당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

 

 

□이겸(李謙)

 

과거 이겸(양세종 분)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송승헌 분

1501년(연산군 7)에 진사가 되고, 1507년(중종2)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흥덕현감, 장령,사성을 거쳐 중화부사에 이르렀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장령으로서 대사성 유윤과 조광조 등을 변호하는

극렬한 상소를 올려 파직되었다. 영조 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조선시대 구성군 이준은 세종의 4남 임영대군 이구의 아들이며,

극 중 의성군 이겸은 가상인물이자 역적으로 몰려 죽은

구성군의 손자로 설정되었다.

 조선시대 예술인이 모여들던 비익당 주인 의성군 이겸(배우 송승헌)은

도화서의 수장으로 그림과 글씨, 거문고 춤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예술혼으로 가득 찬 자유영혼의 소유자이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신념으로 절대군주 중종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는 불꽃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민치형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최철호 분

이영애의 라이벌 휘음당 최씨 (배우 오윤아)의 남편이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서슬퍼런 악역이다.

 

□휘음당 최씨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오윤아 분

중부학당을 좌지우지하는 자모회 실세, 삼인방의

좌장이자 민치형의 부인. 중부학당 자모회는

조선판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권문세도가의

부인들로 구성됐다.

사임당과는 숙명의 라이벌이다. 어린시절 남몰래

이겸을 남몰래 짝사랑했찌만 비천한 신분의 한계와

사임당의 그늘에 늘 가려 있었다.사임당과 이겸의 운명을

뒤흔드는 사건에 휘말리며 질투와 야망의 화신이 된다.

 

주막집 딸 어린 석순(윤예주 분)

 

■비익조(比翼鳥)

견줄 비, 날개 익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

 

■안국방(安國坊)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북북 12방 중의 하나로서,

방안에는 소안동계의 소안동, 홍현, 안현 등이 있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재동, 화동, 안국동 등 각 일부에 해당한다.

 

■수진방(壽進坊)

조선 개국 초기에 한성으로 천도한 후에 정도전이 서울에 방 이름을

포함한 지명을 지을 때 수송동 부근을 가리어 집을 짓고 장수한다는

뜻으로 수진방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이 그린 매화그림 고매첩(古梅帖)

 

신사임당은 특히 매화를 좋아해 맏딸 이름을

매창(梅窓)이라 지었고, 매화 그림을 즐겨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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