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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금산여행]금산 칠백의총 통일의병대회

국내여행지/역사여행

by 호롱불촌장 2016. 5. 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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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여행/칠백의총/통일의병대회♬

 

 

금산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의사의 묘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습니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는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하였습니다. 아~칠백의사여!

 

*여행일자: 2015년 10월 3일(토) 개천절

*여행인원: 이상호님 부부

 

 

칠백의사순의탑 앞에서 열린

통일의병대회

 

칠백의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통일대업을 이루자는 결의대회

 

 

 

순의비각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선행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승장 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가와 미찌오에 의해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입니다.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모셔왔습니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황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습니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습니다.

 

 

의총문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년(중종 39)~1592년(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유학자, 의병장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 1600여명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해산당하고 불과 700명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금산으로 행진,

영규의 승군과 합진해서,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고바야가와의 왜군과 8월 18일 전투를 벌인 끝에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후세에 이를 숭모하여 <금산전투>라 일컫습니다.

 

 

 

칠백의총 관리소의 안내문

 

 

사적 제105호 칠백의총

 

 

칠백의총 안내도

 

 

칠백의총 안내판

 

 

임진왜란때 장렬히 전사한 칠백의사를 기리는

칠백의총의 주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면 의총길 50번지이고,

칠백의총관리소는 041-753-8701번입니다.

 

칠백의총을 방문하시는 역사탐방객 여러분께서는

유익하고 의미있는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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